철학적 선학禪學
posted: 09-Feb-2025 & updated: 22-Mar-2025
신오현 저 「철학적 선학禪學」 중 내가 그 뜻을 이해하고 동의하는 내용 중 중요하다가 생각되는 내용을 발췌하여 아래에 적는다.

p45
선이 자신을 표현하는 그 나름의 방법을 가지고 있고, 따라서 자신을 합리화하는 이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. ⋯⋯ 만일 선이 체험적으로 포착되어야 한다면, 반목해서 말하거니와, 그것은 개념화될 것이 아니다; 그러나 ⋯⋯ 만일 선이 일체의 의사소통수단을 박탈 당한다면, 그것은 선이 아닐 것이다. ⋯⋯ 선의 개념화작업은 불가피한 것이다: 선은 자신의 철학을 가져야 한다. 다만 주의할 것은 선을 어떤 철학체계와 동일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뿐이다. 왜냐하면 선은 무한하게 철학체계 이상의 것이기에 말이다. ⋯⋯ 선은 철학을,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철학함에로 추동하는 일체의 것을, 경시하지 않는다. 그러나 선의 업무는 우리로 하여금, 철학함이 궁극적인 것에 이르려는 인간충동을 남김없이 고갈시키는 것이 아님을, 깨닫게 하는 것이다.1

p52
「공안수련」에서 스즈키는 ‘선-체험을 규정하는 요인’ 4개 항을 대체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: 첫째는 “선-체험의 내용이 대체로 지성적이라는 점이다”(E-II: 55). 유신론적 종교나 신비주의와는 판이하게, 선은 신학적⋅종교적인 정서나 의례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게 느껴질 정도로 “냉철하게 과학적인 증거나 사실matter-of-fact”을 중시한다. 물론 개념 분석적이거나 추론적⋅사변적인 협의의 지성이 아니라, 실천적 지혜나 구체적 사실 또는 사물 자체things themselves를 직관하는 데 필수적으로 기여하는 광의의 지성, 이를테면 전前-형이상학적인 지성 혹은 스즈키의 이른바 ‘선험적 지성주의적인’ 지성을 의미함은 물론이다. ⋯⋯
두번째 요소는 ‘형이상학적 탐색metaphysical quest’의 단계로서 첫째 단계의 “궁극 진리에 대한 지성적 탐색”을 강화하고 심화하는 노력으로서 “선-의식의 지성적 선행조치an intellectual antecedent of Zen consciousness”인바, “선학도의 생활에 새로운 도정을 여는”것이다. ⋯⋯ 스즈키가 “선사들이 선에 주의를 기울이기 이전에, 예외 없이 불교적이든 혹은 다른 것이든 간에 그 가장 넓은 의미에서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”는 견해를 피력했을 때, 그가 말하는 ‘최광의最廣義의 철학’이란 곧 형이상학적 태도⋅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리라. 이와 같이 광의의 지성적⋅형이상학적 수선을 통하여 정신적 일대 변혁 또는 실존 자체의 대반전을 위한 만반의 준비가 완료 되었을 때, 셋째 요소인 선사⋅각자覺者의 인도를 통하여, 마지막으로 넷째 국면인 견성⋅오도가 이루어짐으로써 대단원의 막이 내리게 된다.

- William Barrett, ed., Zen Buddhism: Selected Writings of Suzuki, op. cit. pp. 241, 260. ↩